맞춤정장의 세계에 입문하기 전, 남들과는 조금 다른 체형 때문에 정장을 살 때면 어느 한 신체부위에 맞춰 기성복울 산 뒤 수선을 하는 식으로 정장을 입었다. 보통 어깨에 맞는 105에서 110 정도의 기성 양복을 산 후, 팔길이와 자켓 길이, 그리고 허리 품 등을 수선을 하고 여기에 바지 또한 허벅지에 맞춰 산 후 허리를 대폭 줄이는 등 이것저것 다 합쳐보면 수선비가 거의 10만원 가까이 나온다.
그렇게 수선비가 추가되다보니, 기성 정장은 싸게 입어본 적이 별로 없다. 그래서 오래전부터 맞춤정장을 자연스레 이용하게 되었다. 맞춤정장을 입어온지는 8년 정도 되었다. 그동안 거의 겨울 정장은 항상 맞춤으로 입어왔다고 보면 된다. 맞춤정장은 수명도 긴 편이라, 그 오랜 기간 동안 맞춘 정장은 10벌이 채 안 된다. 가끔 몸에 잘 맞는 기성복을 사서 최소한의 수선비만 들여서 입기도 하는데, 그런 경우가 흔치 않다. 참고로 셔츠의 경우에는 개인적으로 거의 10년째 꾸준히 맞춤 셔츠만을 입고 있다. 정장은 그래도 기성복을 몸에 우겨 맞출 수는 있지만, 셔츠는 목과 어깨, 소매가 기성 사이즈로는 맞는 것을 아직 찾지 못했다.
암튼 이러한 불편함을 해소하고자 입어온 맞춤 정장은 어떻게 보면, 가장 자신의 몸에 잘 맞는 옷을 추가 비용없이 살 수 있는 가장 현명한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원하는 소재, 색깔, 디자인, 핏을 직접 고를 수 있어서 자신만의 개성을 뽐낼 수도 있다. 그런데 이 맞춤정장을 맞출 때 주의해야 될 점이 있다. 그건 바로 디테일을 잘 챙겨야 한다는 점이다. 오늘은 이 디테일에 대해서, 정말 생각지도 못한 부분에서 맞춤정장집들이 개판을 치는 사례를 소개해보려고 한다. 맞춤정장이니까 다 알아서 잘 맞춰주겠지...라고 생각하면 안된다. 핏만 맞으면 되지...라고 생각해도 안된다. 중고차 거래하듯 여기저기 꼼꼼히 다 살펴봐야 하는 건 맞춤정장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우선, 맞춤정장집 고르는 포인트에 대해서 설명해보면, 우선 샵의 조명이 밝은 곳이 무조건 좋다. 아니, 밝지 않은 양복집은 그냥 가지 말라고 하고 싶다. 은은한 조명이 있으면 매장의 분위기는 멋있어 보이는 것은 사실이나, 여기에 양복을 맞추러 온거지 분위기를 느끼러 온게 아니지 않는가. 이런 곳에서는 원단의 색을 정확히 파악하기가 힘들다. 소재 또한 정확히 눈으로 보기가 어렵다. 이런 곳에서는 꼭 원단을 정할 때 밝은 곳에서 볼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해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분명 다크네이비 컬러의 원단을 골랐는데, 실제로 맞춰진 양복은 블루로 나오는 경우가 발생한다.
그리고 두 번째 포인트는, 내가 추가한 옵션이 잘 달려있는지 철저히 확인해야 한다는 것이다. 맞춤정장이 좋은 건 다양한 옵션질을 통해 나만의 옷을 제작할 수 있다는 점인데, 이것이 맞춤정장의 묘미이자 또 잘 챙기지 않으면 없으니만 못한 것이 되기도 한다. 특정 업체를 거론할 수는 없지만, 내가 맞춘 정장샵 중 한 샵에서이런저런 디테일을 마구 추가해 옷을 맞춘 적이 있었는데, 추가 옵션은 잘 넣어놓고 기본 옵션을 개판으로 만들어서 황당했던 경험이 있다. 정장 1+1으로 맞춰준다고 문자 날라오는 바로 그 양복점인데(유명할듯...), 막상 1+1라고 가보면 하복만 가능하다거나, 그 가격이 가능한 소재는 엄청난 저가형이거나 한 부분은 상술이니 넘어갈 수 있지만, 옷은 제대로 만들어야 할 것 아닌가. 그곳에서 내가 추가한 옵션이라고는 리얼버튼, 티켓포켓이 전부였는데, 그당시 워낙 리얼버튼에 빠져 있어서, 정작 옷이 나왔을 때 리얼버튼만 확인하고는 '역시 이것이 맞춤의 묘미지'라고 생각하고 옷을 계속 입어왔는데, 설마하니 티켓포켓이 막혀있을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처음에는 바느질로 막아놓은 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그냥 덮개만 부착해놓은 것이었다. 혹시나 하여 사이드포켓을 봤더니 그것도 덮개만, 가슴의 행커치프도 무늬만... 알고보니 리얼버튼을 빼고는 외부에 달아놓은 장식물이 다 겉만 만들어진 옷이라는 것을 한참 뒤에야 확인을 한 것이다.
워낙 환불 이런걸 귀찮아해서 그냥 입기는 하는데, 정말 어쩜 이렇게 후진국스럽게 옷을 만들 수 있는지 지금 생각해도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다. 정말 딱 겉으로만 봤을 때 리얼이고,(버튼만 빼고) 실제는 껍데기만 있는 그런 양복이 나올 수도 있다는 걸 맞출 때 꼭 알아야 한다. 물론 왠만큼 옷 만드는 집에서는 이렇게 절대 안한다. 그래도 신경쓰지 않으면 이런 일을 당할 수 있는 걸 직접 경험한만큼, 내가 추가한 디테일은 물론이고, 그외의 기본 옵션들도 중고차 거래하듯이 꼼꼼히 살펴야 이런 불상사를 예방할 수 있다. 1+1의 양복과 같은 허접한 마케팅 전략을 쓰는 집들은 아무튼 믿고 걸러야 한다.
또 하나 정장을 맞출 때는 가장 신경써야할 부분이 바로 목 부분이다. 정확히는 뒷목인데(잘 안살피면 뒷목잡고 쓰러진다) 옷을 입었을 때 뒷목이 뜨지 않는지 확인해야 하고 이 부분이 뜬다면 반드시 수선을 요구해야 한다. 남자 수트의 교과서라고 할 수 있는 제임스본드마저도 간혹 뒷목이 뜨는 수트를 입고 나올 때가 있는데, 그만큼 이 뒷목이 몸에 착 달라붙는게 하는 게 너렵고 그게 기술이다. 승모 쪽에 패드를 더 넣어달라고 하는 한이 있더라도 이 뒷목은 반드시 확인을 하는 것이 좋다. 그래야 옷이 붕 떠있는 느낌을 주지 않는다. 옷을 맞추는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기성복이 잘 맞지 않아서 맞추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이 부분이 해결되지 않으면 맞춤의 의미가 사라진다. 그리고 이걸 잘 잡아주는 집이 잘하는 집이다. 디테일한 옵션은 어차피 누구나 할 수 있다. 우리나라 정장 시스템은 어차피 몇 개의 맞춤정장 공장에서 오더대로 만들어 다시 샵에 납품하는 형태라서 디테일의 기술력은 크게 차이가 안난다. (일부 1+1 양복점은 그마저도 떨어지지만...)
개인적으로 옷의 완성도를 중요시하는 사람이라면 명동이나 소공동이 그나마 숙련된 테일러들이 많아서 기본 이상은 하고, 디자인이나 핏을 중요시한다면 강남, 압구정에 잘하는 집들이 많다. 그쪽은 워낙 예복 주문이 많아서 실패할 확률이 적다. 그런걸 잘 모르고 처음 맞춤에 입문한다면, 검증된 유명 업체부터 이용해보는 것도 방법이다. 제이진옴므, 아르코발레노같은 집들은 체인점 형태로 어딜가나 일정한 퀄리티가 보장된다.
요즘은 셀프 체촌으로 비대면 맞춤정장을 해주는 집들도 생겨났는데, 체촌이 상당히 중요한 맞춤정장에서 이 방식이 효과적일지는 의문이다. 요즘같이 거리두기가 일상화된 사회에서는 비대면 방식도 괜찮은 방법일 수 있겠지만, 맞춤의 시작 단계인 체촌만큼은 그래도 전문가가 해주는 게 낫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리고 여담으로 남성복의 체촌은 여자보다는 남자 테일러가 더 잘한다. 이건 뭐 어쩔 수 없는 부분인데, 상의야 그렇다쳐도 하의를 측정하려면, 가랑이도 재야하고, 하다보면 허리에 손도 막 들어가는 등, 줄자가 여기저기를 훑고(?) 가야하는데 아무래도 여자의 손길은 긴장이 될 수 밖에 없다. 옷을 맞추는 게 목적인만큼, 정확한 체촌을 위해서는 남자 테일러가 있는 곳에서 하길 바란다. 원래 남자옷은 남자가 잘 아는 법이니까.
종합하면, 매장의 조명이 매우 밝은 곳에서 원단을 고를 것, 이것저것 추가한 옵션과 디테일을 잘 확인할 것, 그리고 뒷목이 뜨지 않는지 확인할 것, 이 세가지만 잘 확인하면 맞춤정장은 실패할 일이 없을 것이다.
* PS : 본 내용은 상기 언급된 특정 업체로부터 어떠한 사례도 받지 않은, 개인적인 경험에 의거한 글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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